[나의 보잘 것 없음을 일찍 알았더라면]
누구나 스스로를 조금 특별하다고 믿는다. 유년기에 형성된 자존감 덕에, 나도 마찬가지로 훗날 부모님이 자랑스러워 할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적 나는 커서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지만, 성인이 된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엉뚱한 계기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 깨달았다.
대학교 3학년 끝무렵, 싱가폴의 NTU(난양공과대학 –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대외활동으로서 교환학생은 여러모로 혜택이 많은 제도였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한국에 학비를 내고 외국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점과, 학생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해외 생활을 경험할 수 있었기에 정말 매력적이었다. 교환학생이 아니고서 ‘해외 잠깐 갔다 오려고’라는 말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는 드라마 같은 일은 독자들에게도, 필자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첫 해외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바위 밑 다슬기였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서양 친구들은 ‘새로운 새로운’친구였기에 매일매일이 설렜다. 버스 요금을 감자로 결제하냐 놀림 받던 시골아이가, 이제 감자가 아니라 ‘포테이토’ 라며 으스댔으니까 말이다. 다양성이 존중 받는 세계는 그 만큼 다양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아시안이 아니라, 영어를 못하는 아시안이었기에 바로 앞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왜 자꾸 끼냐”라는 문장을 알아듣지 못해 웃으면서 ‘I missed you, Brother!’라고 외쳤다. 멍청했다. (내가 수모를 겪었다는 것은 옆에 있던 친구가 나중에 말해주어서 알게 됐다.)
이 일은 나에게 상처 아닌 상처가 되었다. 그러고 나니 백인, 흑인, 황인 중의 한 카테고리에 분류된 내가 보였다. 그리고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과 외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보였다. 넓은 시야와 안목은 이런 식으로 여러 경험과 수용을 거쳐 확장되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이 학교에서 천재를 직접 눈으로 본 적 있다. 교환학생 당시 난양공대는 세계 대학 순위 11위로 아시아에서 1, 2위를 다투는 명문 대학교 중 하나였다. 나는 통계학을 전공했지만 컴퓨터공학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학과로 지원하였고, '컴퓨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라는 수업에서 Stanley Lin이라는 대만 친구를 만났다. 영어를 쓸 때 중국어 성조가 섞여있고, 친절하며 조용한 모범생 친구였다.
수업 과제로 게임을 만들어 오는 과제가 주어졌다. 과제는 특수기호로 아이콘을 만들고, 2차원의 배열에 아이콘을 위치시켜 상대가 숨겨놓은 타겟을 맞추는 게임이었다. - 보드게임 배틀쉽 (게임 알고리즘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Stanley Lin은 제출하는 날 알고리즘 1,000줄을 짜오며 완벽하게 과제를 끝내버렸다. (비유를 들자면, 조리학과 학생이 과제를 받고 판매해도 손색이 없을 요리 레시피를 짜왔다는 뜻이다.)
나는 취준을 하는 동안 싱가폴에서 겪었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여러 기업에 지원하는 동안 여러 카테고리의 사람들을 이겨내고 기업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실패와 거절을 겪으며 또 나의 부족함과 주제를 알게 되었다. 내 주제와 내 삶의 주제.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객관적으로 어떤 사람인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나는 어떤 색깔을 가진 사람일까?’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내 자신이 그렇게 하찮은 인생살이나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한 적 없다. 하지만 취업 준비를 하면 할수록 나는 단지 패배자들 축에 낀 볼품 없는 사람이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을 때마다 나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랬던 회사들이 미워졌고, 인정을 받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취업이 길어질수록 아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나는 학창시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나? 그랬으면 지금 더 좋았을텐데.
나는 대학시절 더 열심히 살 수 있었을까? 왜 그때부터 노력하지 않았을까.
나는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걸까? 경영보단 통계가 나았을 걸.
대학 다니는 동안 영어라도 할 걸 그랬나?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았나봐.
다시 돌아가면 편입이라도 할 걸 그랬나? 재수 한 번 한다고 생각 할 걸.
술을 덜 마실걸
침대에 조금만 누워있을걸
그 시간들을 되돌릴 수 있다면.
.. 했다면 –
.. 할 걸 -
잘못은 여러분이 아니라 사회, 경제가 저질렀는데 왜 취준생들은 자기들의 인생을 돌아보고 헐뜯으며 후회하는 걸까. 취업은 경제 활동 인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인력은 시장경제가 호황일 때 수요가 많아지는 필수 자원이다. 즉, 198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기로 돌아갔다면 취준생이라는 단어도, 취업을 못해 스스로를 낙인 찍는 일도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은 현재 고성장 시기를 지나 완만한 성장을 하는 성숙 시기에 도달했다.
내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건 취준생을 상대로 공포 마케팅을 하는 컨설팅 업체들과 학원들이다. 이렇듯 취준생은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하며, 울타리 밖을 나와 야생 초원에 버려진 초식동물과 같다.
우리는 사회적이지 않은 약자이다. 나의 보잘 것 없음을 일찍 알았더라면 점점 우하향 하는 자존감을 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도 ‘취업을 위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수험생’이라는 뜻인 ‘취준생’의 단어 속 한 명으로 살아간다. 지금 이 시기가 가시밭 길은 아닐지라도, 봄 내음 가득한 꽃 길이 아닌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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