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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취준생

[오늘도 취준생] #1 - 프롤로그

by 웰러맨 2022.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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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hy-gge.tistory.com/59

 

[오늘도 취준생] #0 - 소개하는 글

[소개하는 글] 취업 준비할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취업준비를 하다 보면 문득 ‘지금까지 해왔던 게 잘못된 방향이 아니었을까’ 라는 의심이 생긴다. 옳지 못한 방향으로 달려온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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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7시 30분]

알람 소리와 함께 꿉꿉한 발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포구 공덕동 근처에 위치한 3평 남짓의 자취방은 워낙 좁아서, 몸을 눕히면 머리맡에 신발장이 닿는다. 탁한 가죽냄새와 운동화의 먼지들이 더 잠에 들지 못하게 나의 신경을 쿡쿡 찌른다.


9시에 신촌에서 취업준비 및 시사상식 스터디가 있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노트북을 열어 자료를 훑듯이 확인하고 ‘타악’소리가 나게 덮는다. 쓰레기통에 넣듯 노트북을 책가방에 던지고 버스정류장으로 비몽사몽 걸어가는 길,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버스를 타지 못 할 것이다.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엉덩이를 주욱 빼고 SNS 켠다. 곧이어 이어지는 지인들의 행복한 일상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벌어진 술자리와 맛있는 음식들은 반쯤 감은 눈을 질끈 감게 한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던데, 오늘도 졌다.

나에겐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카톡방이 하나 있다. 오픈카톡방인 ‘금융디지털 취준방’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잔뜩 있다. 그들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취업 준비생이거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직 준비생이다. 일찍 잠에 드는 나는 밤사이 그들이 늘어놓은 수다삼매경을 읽으며 아침을 깬다. 어느 회사가 좋은 지, 조직문화는 어떨지에 대한 상상 토크부터, 어느 기업의 면접 후기나 서류 합불 여부를 두고 토론하기도 한다. 나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약속시간보다 5분 먼저 스터디룸에 도착하니 스터디 멤버가 먼저 와있었다. 가벼워 보이기 싫은 마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를 한 뒤, 적막을 풀어보려 스터디 주제에 관한 스몰토크로 말문을 열었다. 나와 동갑인 그녀는 나와 여러 스터디를 같이하는 취업 준비 메이트이자 좋은 친구이다.


곧 다른 스터디 멤버들도 시간을 조금 넘겨 도착했고, 또래들과 나눌 법한 수다를 나눈 뒤 각자 조사해 온 시사상식에 대해 토론했다. 이 안에서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얼추 판가름 나는 것이 씁쓸하다. 스터디가 끝나고 남은 인원들끼리 점심 끼니를 때웠다. 신촌의 미정국수집은 좁지만 취준생과 대학생들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혼밥이 최적화된 가게 구조와 빠른 회전율 덕분이다.

그릇을 비우고 마음이 잘 맞는 이 친구들과 커피라도 한잔하며 수다를 떨고 싶지만, 역시나 그럴 여유가 없다. 오늘도 해야 할 것이 산더미기에 곧장 근처의 도서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인적성 모의고사, 오답풀이, 기업분석, 또…’ 손가락으로 할 일들을 하나씩 세다 보니 어느새 도서관에 도착했다. 나의 청춘을 묻는 무덤이다. 아니, 무덤이 아니라 성공의 요람이었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눈치를 본다.]

갑자기 전화가 왔다. 침묵이 가득 찬 도서관에서 스마트폰 진동이 강하게 책상을 두드린다. 화들짝 놀라 좀도둑처럼 뛰어나가는데 전화가 끊어졌다. 엄마였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왜??”
“그냥~ 연락이 없어서~ 밥은 먹었어?”


밥을 먹지 않았다. 근처 음식점은 이미 질리게 먹었고, 나가기 귀찮다.

무엇보다 아까 군것질한 과자 덕에 허기가 지지 않는다.


“그럼~ 완전 배불러~”
“그래~ 밥 잘 먹고 다니고… 엄마 때문에 공부 방해되지? 얼른 들어가.”


통화를 시작한지 10초도 안 돼서 엄마가 내 눈치를 본다.


“아냐! 나 마침 쉬려고 했어. 아까 낮에…”
이대로 끊어버리면 엄마의 마음에 죄책감을 심어줄까, 시답지 않은 얘기를 몇 분 더 이어가고 전화를 끊었다.

잘하고 있다는 말과 씩씩한 목소리로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은 나의 눈치를 본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아도 묻지 않고,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도 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궁금해하기 전에 나의 상황과 내 얘기를 미리 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나도 내 앞날이 한치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막막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나보다 부모님이 더 좋아하실 텐데, 주변 사람들에게 자식 자랑도 많이 하실 텐데, 그러려면 내가 취업을 잘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큰 압박감이 나를 누른다.

 

‘내가 취업을 잘 할 수 있을까?’

망상과 기대, 압박과 우울감이 동시에 나를 덮친다. 이럴 땐 잡생각을 잊도록 취업과 관련된 영상을 보는 것이 마음 건강에 좋다. 이왕 흐트러진 집중력이 나의 변명이 되어, 마음을 식힐 겸 유투브에 몸을 눕힌다.

유투브 추천 알고리즘으로 ‘우리는 끝을 준비합니다. – 잡코리아’ 라는 영상이 추천 목록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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